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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아해빙하의 말로

THE DEMISE OF AN ADRIATIC GLACIER

극권의 나는 새들은 빙층이 갈라지는 소리를 통해 느리게 포르티시모를 배운다고 생각한다. 빛과 진동이 대척에서 빙상을 유랑 보내고, 그것은 해류를 따라 단단한 것에서 경도 없는 것으로 환절한다. 해수면 아래에는 관측되기 이전에 가변하는 형상이 있다. 손으로 더듬어 실체를 확인하려 든다면 넘실대는 물결의 윤무 속에 잡히는 것이란 오롯이 체온과 수온, 그늘 따위를 갉아먹는 벌레 같은 빛이다. 계속 붙잡을 수 없다는 속성을 공유하는 그것들은 인간을 영원히 항해하는 갑판원으로 남게 한다. 대개 귓바퀴와 비강만이 떠날 시기를 알고 있는데, 밀려오는 것을 부여안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에서는 밤 동안 서로 부둥켜안은 시체 두 구가 떠내려왔단 풍문이 파다했다. 낭만적인 비극을 흠모하는 시민이 모여들었을 땐 아드리아해의 장엄한 수중으로 한 덩어리 질료가 가라앉았다. 돌고래인 줄 알았소. 시체 하나가 산발한 것을 등지느러미로 착각했으니. 새벽까지 취해 있던 이유로 유일하게 한 쌍의 시체를 발견한 배불뚝이 시장이 말했다. 노령의 묘지기는 강가에 모여 술렁이는 간객을 지나 그들 선단에서 삽을 꺼냈다. 그리고 낟알을 한 줌 입에 넣고서는 묵묵히 목책을 박기 시작했다. 땅을 내리치는 동작이 거슬렸던 간객이 하나둘 떠났다. 꿈과 지중은 인간이 갈구하는 한 단면만을 내비치는 까닭에 이면을 이해할수록 황량한 고토를 목격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난한 말뚝질이 지면을 뚫는 소리가 간객의 마음에도 파티불룸의 흐릿한 윤곽을 그려 넣었음은 응당 그럴 일이었다. 누가 초연히 흘러가는 간객으로 속죄할 수 있을까. 귀가 불쾌해진 이들이 대속할 수 없다며 자리를 뜨고, 떨기나무가 불타는 소리를 듣는 나는 자연히 말발굽을 연상한다.
모든 것을 책으로 만들던 시대, 베네토의 어느 인간들이 도시를 스크립토리움으로 삼았다. 압착된 운명이 수천 년 시간을 건너 되돌아왔다. 인지할 수 없는 속도로, 내려왔다. 여리고, 천천히, 곤돌리에레들은 종교 탄압 이후 소장하던 도서를 빼돌렸다. 일부는 운하에 떨어지고 서점이 소실되었으나 수로를 따라 흐르는 미세한 조류의 비가시적인 자장이 침잠하는 질료에 와닿았다. 세계의 바다를 구성하는 조수를 막더라도, 그것들은 비가 되어 내릴 것이다. 세계를 적실 것이다. 세계는 마술적인 물의 집산과 홍수에 좀체 맥을 추리지 못할 것이다. 온전한 차양막을 만들어 빛과 비로부터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지니게 될 때, 비로소 한 움큼 (불)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흐른다. 느리게. 그러는 동안 얼음 결정이 소멸과 융합을 반복하는 소리를 듣는다. 어떤 음악은 도시의 전화선이 흘려보내는 말을 모조리 가로챌 만큼 간섭하기를 즐긴다. 히프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를 속삭이던 앳된 연인도, 십수 년 만에 귀향을 알리는 자식도, 만취한 채 태엽 같은 말을 되감는 시인도, 통화자가 노이즈에 휩쓸려 말을 잃는 사건을 동시에 겪었다. 말소리가 음악과 합곡한 것이다. pronto(여보세요)? 가벼이 혓바닥을 튕기며 입술을 오므린 채 폐와 연구개를 지나 성문으로 이어지는 성문하호기압을 내보내지만, 건너편에서는, 음, 말이 없다. 전화 교환원은 용소에서 일어나는 물보라처럼 무수히 인사말과 의문부호가 맺어지는 플러그를 꽂는다. 통화자의 성대음이 수화자의 의식 안에서 미약하게나마 감각으로 남더라도, 불안정한 주파수에 누화가 생겼으므로 수신인 불명이 된 전화가 끊어지는 것을 피할 순 없다. 미처 전해지지 못하여 배전망에 남은 언어는 격자 진동을 통해 가능(적인)할 수 있는 것에 머무르며, 다시 진동판에 도달할 어느 음계를 기다린다. 그렇다면, 음, 특정한 대화자에게 향하지 못한 말은 어디로 도달하는 것인가? 알아듣지 못할 헛소리는? 음. 나의 근원적인 물음.
간객이 다른 죽음을 찾으러 떠나간 뒤에도 묘지기는 삼 일의 시간 동안 운하 어귀에서 매시 물결의 차이를 셈했다. 그가 누굴 추도하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스스로를 향한 모방적이거나 희극적인 애도일지도. 묘지기는 묘문 앞을 맴도는 문지기같이 시린 얼굴로 읊조렸다. pronto(빠르게). 부디 빠르게 잊히길. 묘지기가 떠나고 따사롭던 며칠간, 두 구의 시체가 함영을 반복했지만 아무도 취하지 않았기에 발견하지 못했다. 혹한의 바람이 짖고 가고, 극권의 나는 고요해진다. 나는 사방을 에워싼 굴절된 창으로 푸르른 피사체를 여지없이 관찰한다. 와선(渦禪)이 이끄는 방향대로, 헤맴이 해내는 방식을 따라, 이미 언 것과 얼 것이 부양하는 장력과 함께, 깨지기 쉬운 자기 안에 스스로 갇혀 거울과의 독백을 긴밀히 나눈다.
빙하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한시적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소리낸다. 우주를 듣고 보게 하는 진동수가 그렇듯. 언젠가 보이지 않는 세계로 우리를 잠겨 들게 하도록. 흰 밤에 검은 꿈을 꾸면서, 미래시제로 회절하지 못할 과거의 반향으로 나의 설계 구조를 잃어가며, 폐기된 지 오래된 전화번호를 향해 19세기의 통신 프로토콜을 준수한 전기 신호를 전송한다. 전화번호부의 인명과 주소가 사라졌을지라도 그 텍스트는 계속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