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HN JONG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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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의 집

얼떨결에 남편과 머리를 맞댄 해연은 기분이 이상했다. 주치의 앞에 나란히 앉아 소견을 듣는 시간이 마치 회전 교차로에서 운전할 때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진출하려고 핸들을 꺾으면 다른 차량이 보닛을 들밀며 가로막고, 그때마다 해연은 초조한 표정으로 원형의 도로를 감돌 수밖에 없었다. 돌면 돌수록 빠져나가지 못할 이유는 늘어나기만 했다.

01
웹 열람용 발췌 · 재조판
연인들의 집

볼펜이 CT 사진 위에 작은 원을 그리다가 멈추는 순간, 해연은 양손 주먹을 꽉 쥐며 펜촉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가져 갔다. 주치의는 뇌의 한 부분을 톡톡 치다가 정확한 진단을 위해 조직검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직 단언할 수 없다, 일주일 뒤 내원 해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주치의의 말소리는 먹먹한 잡음이 되어 멀어졌다.

02
웹 열람용 발췌 · 재조판
AHNJONGSUNG

HOMENAKWON · ORIGINAL TEXT

아드리아해 빙하의 말로THE DEMISE OF AN ADRIATIC GLACIER

극권의 나는 새들은 빙층이 갈라지는 소리를 통해 느리게 포르티시모를 배운다고 생각한다. 빛과 진동이 대척에서 빙상을 유랑 보내고, 그것은 해류를 따라 단단한 것에서 경도 없는 것으로 환절한다. 해수면 아래에는 관측되기 이전에 가변하는 형상이 있다. 손으로 더듬어 실체를 확인하려 든다면 넘실대는 물결의 윤무 속에 잡히는 것이란 오롯이 체온과 수온, 그늘 따위를 갉아먹는 벌레 같은 빛이다. 계속 붙잡을 수 없다는 속성을 공유하는 그것들은 인간을 영원히 항해하는 갑판원으로 남게 한다. 대개 귓바퀴와 비강만이 떠날 시기를 알고 있는데, 밀려오는 것을 부여안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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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DAE MUNHAK2025.06

사냥철Open Season

도슨은 출근길에 소유인 불명의 사냥 가방을 발견했다. 고풍스러운 풀 그레인 가죽, 그리고 탈착식 벨트가 둘러진 그 가방은 누가 봐도 이상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한낮의 전시장 입구 한구석에 비스듬히 놓인 채, 지나다니는 인파와 무관하다는 듯 정지된 모습으로 도슨의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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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DAE MUNHAK2025.12

위지위그WYSIWYG

빗방울이 유리창에 맺혀 점점이 떨어졌다. 바닥에서 눈을 뜬 그는 몸을 말며 떨었다. 저택의 보이지 않는 틈새로 외풍이 조금씩 들어 오는 듯했고 어디선가 비닐이 파르르 떨리는 소리와 전자 제품이 가동하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그럴 때마다 그는 저택이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말한다는 건 살아 있다는 것. 그렇다면 거실의 괘종시계 옆에 비스듬히 꽂힌 도끼나 저절로 발생하곤 했던 화재는 스스로 무너지기를 택한 것일까. 그는 나무토막과 조간지를 뭉쳐 화목 난로에 깔아둔 다음 성냥을 피워 던져 넣었다. 불꽃이 서서히 번지면서 그를 붉은빛으로 물들였다. 일렁이는 불길을 베이스 삼아 장작의 안쪽부터 타들어가는 소리가 불규칙하게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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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JANG WEBZINE2026.03.01

서브리미널SUBLIMINAL

여러 대의 카트가 교차 레일 지점을 충돌 없이 지나갔다. 높은 위치를 누비면서도 질서 정연히 움직일 줄 알았다. 출로에 다다를 때쯤 천천히 감속하더니 허공에 뚫린 검은 구멍 안으로 사라졌다. 윤무의 눈동자는 천장 주행 장치의 행렬을 따라가는 중이었다. 그 장면으로부터 슬픈 기분을 느끼고는 습관처럼 뒷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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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DAE MUNHAK2026.09

연인들의 집house of the lovers

얼떨결에 남편과 머리를 맞댄 해연은 기분이 이상했다. 주치의 앞에 나란히 앉아 소견을 듣는 시간이 마치 회전 교차로에서 운전할 때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진출하려고 핸들을 꺾으면 다른 차량이 보닛을 들밀며 가로막고, 그때마다 해연은 초조한 표정으로 원형의 도로를 감돌 수밖에 없었다. 돌면 돌수록 빠져나가지 못할 이유는 늘어나기만 했다. 볼펜이 CT 사진 위에 작은 원을 그리다가 멈추는 순간, 해연은 양손 주먹을 꽉 쥐며 펜촉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가져 갔다. 주치의는 뇌의 한 부분을 톡톡 치다가 정확한 진단을 위해 조직검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직 단언할 수 없다, 일주일 뒤 내원 해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주치의의 말소리는 먹먹한 잡음이 되어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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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 Sea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