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HN JONGSUNG안종성

연인들의 집 — 안종성

AHN JONGSUNG · 안종성

연인들의 집 · 현대문학 · 2026년 9월호

전체 작품으로 돌아가기 작품 입구 · 연인들의 집
연인들의 집로 내려가기

연인들의 집

문틀 너머의 방, 흰 커튼과 목재 바닥 위로 들어온 햇빛.
Photo by Sami Abdullah on Pexels사진 출처 새 창
읽는 곳

경계

생성 이미지 · 출처
목재 문틀과 회색 타일 벽 사이의 닫힌 경계.
창 옆의 목재 식탁과 의자, 유리병에 담긴 꽃다발.
Photo by Alex Tyson on Pexels사진 출처 새 창

내부

깨진 콘크리트 개구부와 그 안쪽의 어두운 벽.
표면에서 점으로

벽의 밀도

같은 표면의 점이 차례로 쌓입니다.

표면 너머

빈 공간의 깊이

사물 없이 어두운 콘크리트의 질감만 남은 빈 공간

표면 너머에 남은 빛.

연인들의 집

발표처현대문학2026년 9월호 · 통권 861호
YES24에서 게재호 보기온라인 서점 · 게재호 서지·목차새 창

작품에서 고른 문장

4개 발췌
발췌 01
얼떨결에 남편과 머리를 맞댄 해연은 기분이 이상했다. 주치의 앞에 나란히 앉아 소견을 듣는 시간이 마치 회전 교차로에서 운전할 때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진출하려고 핸들을 꺾으면 다른 차량이 보닛을 들밀며 가로막고, 그때마다 해연은 초조한 표정으로 원형의 도로를 감돌 수밖에 없었다. 돌면 돌수록 빠져나가지 못할 이유는 늘어나기만 했다. 볼펜이 CT 사진 위에 작은 원을 그리다가 멈추는 순간, 해연은 양손 주먹을 꽉 쥐며 펜촉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가져 갔다. 주치의는 뇌의 한 부분을 톡톡 치다가 정확한 진단을 위해 조직검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직 단언할 수 없다, 일주일 뒤 내원 해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주치의의 말소리는 먹먹한 잡음이 되어 멀어졌다.

안종성 · 『연인들의 집』

발췌 02
어둑해진 도로에서 점점이 빛나는 붉은 후미 등은 정체 모를 동물의 안광처럼 해연에게 향했다. 어디선가 차량 내부의 작은 부품 하나가 이리저리 부딪히며 내는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입 닥쳐.” 저녁 식사 메뉴를 묻듯 담담한 목소리였기에 남편은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입 다물라고. 닥쳐, 닥쳐, 닥쳐. 언제 닥칠래. 나 운전하는 거 몰라서 그래? 당신 때문에 하나도 안 보이고 안 들리잖아. 이러다가 사고 나면 어쩌려고 그래. 그때 가서 찌그러져 있을 심산이야? 왜 이렇게 나를 못살게 굴어. 운전 중이잖아. 당신 말고 내가. 그러니까 제발 그 입을 좀 닥치란 말이야.”

안종성 · 『연인들의 집』

발췌 03
이틀 뒤 해연은 artifact의 명함 이미지와 함께 업체가 방문해도 괜찮은 날짜가 언제인지 묻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명함에 있는 정보만으로는 어떤 사람이 몇 명이나 온다는 건지 가늠되지 않았는데, 민경과 통화할 때 이런 생각을 슬쩍 꺼냈더니 걱정이 무색할 만큼 밝은 목소리가 돌아왔다. 민경 부부 역시 artifact에 집을 맡기고 있으며 자기들만의 연례행사라고 부를 만큼 익숙한 서비스라는 것이었다. 민경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가구는 조금씩 움직이고 집은 아주 느리게 무너지는 것 같다고도 했다. 무너진다. 해연은 그 표현이 마치 사람의 주름살을 묘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민경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엄마, 이삿짐센터나 가사도우미 같은 거야. 조용히 찾아오고, 자기 할 일을 하고, 원래 없던 것처럼 떠나고.

안종성 · 『연인들의 집』

발췌 04
“원래 알고 계신 공간인가요? 보일러실이 하나 더 있다든가.” “아뇨, 여기 화장실은 남편만 주로 사용해서요. 이제는 애들이 자고 갈 때 제가 잠깐 사용하고, 평상시에는 쓰질 않아요.” 해연은 문득 자기 말이 변명처럼 튀어나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기에 뭐가 있는지 꼭 알아야 일하실 수 있는 건가요?”라고 덧붙였는데, 말을 할수록 혐의가 강해지는 느낌이었다. 남자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건축 도면에 나온 구조와 실제 내부가 다를 경우 만들어지는 결과물도 이상할 수 있습니다.” 내밀한 공간인 화장실 한가운데서 아무 인연도 없는 남자가 영문 모를 도구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보며 해연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집 안을 내보이는 행동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벽 저편까지 샅샅이 맡긴 자신을 두고 남편은 뭐라고 할까. 평소 입버릇처럼 말하던 대로 생각머리가 없다고 할까.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고 할까. 아마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세상 모든 일이 마땅찮은 듯 투덜대다가 창고 방에 틀어박혀 있을 것이다. 일부러 책을 떨어뜨리거나 발로 벽을 차면서 소음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안종성 · 『연인들의 집』

서지·작품 정보

바라보는 자리

문틀 너머 빈 공간을 바라보는 인물의 뒷모습.

안종성

2025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했습니다.

작가 소개